날글 : 자유로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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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물에 대한 구분을 하려는 이유는 생명은 당연히 존엄하고 보호하고 아껴야한다는 생각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동영상에도 나오듯이 태풍이 생명이라고 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러면 태풍을 보호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태풍은 자연재해로써 많은 피해를 입히는 현상인데, 생명이라하면 죽이면 안 되는 어떤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것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을 것이다. 생물이면 어떻게 무생물이면 어떠한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나. 즉 태풍이 생물이라고 해도 별 문제가 없다.
 
생명이 소중한지 아닌지 자연 법칙에 드러나있지 않다. 오히려 죽음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을 유지하는 게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온갖 노력을 해야 간신히 유지되는 목숨. 어쩌면 생명 자체의 가치보다는 생명을 유지하는 노력과 의지가 생명을 소중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우리가 마음편히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삶의 의지를 보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녀석들의 절규를 듣고 그 고기가 목구멍으로 당장 넘어갈까? 나는 아마 못할 것 같다. 당장 배고프고 먹어야 산다는 의지가 강하면 당연히 먹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풍족한 세상에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고 죽고 싶어 하는데도 내 생명은 가치가 있을까? 그럼에도 가치가 있어 보인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추론한다.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래서 죽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100% 믿지 않는다. ‘무슨 이유가 있겠지.’, ‘삶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면 그런말을 할까’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안타까워할 수 있다. 직접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가 생명체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추론할 수만 있어도 그 생명을 소중히 대하게 된다.
정리하지면, 내 생각엔 생명인지 무생물인지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살고자하는 의지가 살아야할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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