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글 : 자유로운 글쓰기


동대문에서 1호선을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지 아저씨가 다른 칸에서 들어왔는데 다른 거지보다 깨끗했고 아파 보이지 않았다. 발을 스케이트 타듯이 찍찍 밀고 다니고 표정이 좀 멍해 보였지만 금세 날카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싶진 않다. 나도 일이천 원에 속이 쓰릴 때가 있고 돈을 줘도 저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옆에 아줌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거의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저런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멀쩡해져"


그런데 거지 아저씨는 대뜸 옆자리 아줌마한테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실패. 포기하고 다음 칸으로 향하는 듯했다. 갔나 보다 했는데, 이 아저씨가 또 내 앞을 지나갔다. 대각선 앞에 있는 할아저씨에게 또 뜬금없이 손을 내밀더니 이번에는 돈을 받았다. 이번에는 다른 칸으로 가겠지 하고, 뒷모습을 멀뚱멀뚱 보고 있었는데 그가 고개를 휙 돌렸다.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더니 다시 앞을 보고 열차 칸 끝까지 갔다가 뒤돌아서 내 쪽으로 왔다.


아줌마의 말이 맞다. 멀쩡한 사람인데다 전략까지 세운 게 분명하다. 나는 호기심이었지만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 칸으로 넘어가기 전에 뒤를 돌아보고 눈이 마주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콕 찝어서 구걸을 하는 것이다. 꽤 성공 확률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절대 안 줄 거다. 이런 상황에서 자는 척하긴 좀 그렇다. 이미 눈이 마주쳤으니까.. 점점 거지 아저씨가 다가오고, 나한테 오는 게 아니기만 바랐다. 하지만 역시 나였다. 거지 아저씨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뻔히 보여도 안 보이는 척, 앞에 투명 인간이 있는 것처럼 눈에 초점을 흐트리고 가만히 있었다.


'윽, 계속 버팅기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는 역시 똑똑했다. 내가 줄 기미가 없자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뒷모습을 흘깃거리며 몰래 봤는데 똑같은 구걸 전략을 사용했다. 다른 칸에 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뒤돌아보고 눈이 마주치면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지 아저씨는 서너 번 우리 칸을 왕복하더니 더는 아무도 자기를 안 보는지 다른 칸을 갔다. 그러면서도 통로에서 우리 칸을 끝까지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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